첫째는 조리원 연계된 전문 사진관에 갔었다. (촬영은 무료이지만 성장앨범을 계약하지 않으면 사진 한 장도 제대로 못 받는 그런..) 계약이고 뭐고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옷 똑같은 콘셉트로 공장처럼 찍어내는 사진을 우리 아이 사진이라고 하기 싫어서 백일부터는 내가 찍었다. 셀프 촬영이라고 해도 비슷하게 유행하는 구도나 숫자 풍선 같은 소품은 결국 또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것 같아서 우리 집에 있는 대로, 원래 입던 옷 입히고 쓰던 물건 가지고 자연스럽게 찍기로 했다.

둘째는 38주 3일에 3.2kg으로 태어났다.
결혼 전부터 나는 결혼하면 무조건 아이는 있어야 하고, 짝수여야 하고, 이왕이면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었는데 감사하게도 딸 같은 첫째 아들과 진짜 딸이 생겼다. 주변에 도와주는 어른도 없는데, 육아휴직을 별로 선호하지도 않는 회사를 다니면서 둘째가 가당키나 할까 고민했던 적도 있었지만 꿈에서 오색찬란한 아기 부엉이를 보고는 마냥 찾아온 아이가 좋았다.


사실 둘째 임신기간은 편할 수가 없었다. 회사 업무와 첫째 육아, 첫 임신 때부터 시작된 수면장애로 나는 두 시간씩 두 번 자는 게 습관이었고, 임신 내내 감기를 거의 달고 살았고, 임신성 당뇨로 정점을 찍었다. 외식은 금물이니 매 끼니 밥을, 당뇨식과 일반식을 해내려니 휴식은커녕 할 일만 늘어났고, 회사일도 당최 줄지 않아 유도분만 하루 전날까지 출근해서 일을 했다. (다행인 점은 두 번째 임신이다 보니 출산 징후를 놓치진 않겠다 싶은 자신이 있어서 그렇게 불안하진 않았다.) 매일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일상을 어떻게든 참아낸 이유는 첫째 아이와 남편이었고, 생각지 못한 나쁜 일을 겪으면서도 스스로를 챙길 수 있었던 건 뱃속에 있는 아이 덕분이었다.
내가 다닌 병원은 유도분만 하루 전 저녁 8시에 입원해야 했고, 나는 6시 업무 종료 후 저녁 식사하고 (입원하는 순간부터 분만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못 먹는다) 분만실로 입원했고, 다음날 출산은 진통 느끼고 두 시간도 안 걸려 순식간에 끝났다. (딸은 아들보다 가벼웠고, 머리도 작았고, 약간 과장 보태면 나오는 느낌도 안 들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 예정된 마지막 임신과 출산이 끝났다.

첫째랑 2주나 떨어지기 싫었기 때문에 조리원은 안 가기로 했다. 이틀 만에 집에 왔고, 신생아는 먹고 나면 두세 시간씩 잤다. 50일인 지금 밤에 한 번은 다섯 시간 정도 잔다. 첫째 때는 지금 시점에 한 시간씩 두 번 겨우 잤는데 그때부터 시작된 수면장애를 둘째가 고쳐줄 예정인 듯하다.

출산에 상대적으로 덜 고생해서 그런지 출산 직후에 몸은 덜 아팠지만 소변 조절이 한동안 힘들었다. 누워있다가 일어서면 소변이 마려운 느낌도 없었는데 마치 양수 터지듯 갑자기 콸콸 흘러나왔다. 맘스 안심팬티로도 감당이 안될 정도였다. 초산모보다 경산모들에게 더 많이 일어나는 일인데, 케겔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처방이 없었다. 그래서 출산 후 한동안 외출은 엄두도 못 냈다.


모유수유가 아이에게 얼마나 좋은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단지 사람 아기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음식이겠거니 하고 있다. 내가 완전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이유는 순전 내 게으름 이슈다. 모유수유를 하면 분유나 수유용품 고민도 안 해도 되고, 젖병 닦고 소독하는 일도 없고, 물 끓이지 않아도 되고, 새벽마다 분유 타러 나가지 않아도 된다. 짐도 없고 용품도 필요 없고 단지 나 하나, 그리고 오픈이 쉬운 옷. 아주 미니멀한 것이 나한테는 큰 장점이었다.
낮이든 밤이든 수유를 온전히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어차피 아이 우는 소리에 깨는 건 나일 테니까 한 사람만 고생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대신 남편은 내가 먹을 밥을 다 해준다.) 식단조절은 임당 때 조절한 수준에 비하면 못 먹는 게 없다. 분유값 안 드는 돈으로 내가 맛있고 좋은 음식 먹게 되니 일단 힘들면 스스로를 챙기는 것부터 포기하는 나라서 모유수유는 그 마지노선을 지켜준다. 다른 사람들은 아닐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이 나한테는 엄청난 편의로 다가왔다.
또 하나의 장점이랄까.. 나는 출산 후에도 아이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것을 심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리는 듯한데, 모유수유를 하면 아이와 내가 반 강제적으로 떨어질 수 없으니 이유하는 6개월~1년여의 시간 동안 서서히 아이를 독립된 개체로 받아들일 여유가 생기는 기분이다. 그렇게 천천히 첫째 아이를 개별의 존재로 인정하고 나니 이 아이가 나와 다른 생각, 다른 행동, 다른 취향,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오히려 느긋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모유수유의 아마도 가장 불편한 점은 아이가 얼마나 먹었는지 알 수 없다는 부분인데, 이 부분은 애초에 포기하면 편하다. 어차피 알 수 없는 부분인데 알려고 애쓰면 뭐 하나. 부족하면 또 달라고 울겠지 뭐. 분유는 너무 눈에 보이니 일정 양 먹이기 위해 애쓰게 되는데 나는 그것으로부터도 자유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또 하나, 사출로 옷이 젖는 문제가 있다. 낮에는 상대적으로 괜찮은데 새벽에 특히. 젖에 나와서 내 몸 위로 주르르 촉감에 잠에서 종종 깬다. 이건 어찌해도 방법이 없긴 하다. 참아야지.
아, 젖 물고 자버리는 문제가 있다. 조금 먹다 자버리고 도저히 안 일어나서 눕히면 부족하다고 깨서 울고 또 먹이고 자다 깨서 울고를 다섯~ 여섯 번 정도 하면 두 시간은 쥐도 새도 모르게 지나가있다. 그건 좀 많이 힘들고, 아직 극복할 방법도 못 찾았다. 그냥.. 자라면 좀 덜해지니 시간이 해결해 주길 바란다.
생각지 못했던 문제는 둘째 젖물리는 일을 첫째가 매우 싫어한다는 점이다. 분유수유라면 그냥 아빠나, 부모님이나, 정 없으면 시터를 고용해서 맡길 일인데 모유 직수는 내가 아니면 안 돼서 수유 때마다 엄마랑 놀고 싶은 첫째 아이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동생은 아직 아기라서 엄마젖밖에 먹을 수 있는 게 없어. 너도 아기 때 엄마 젖만 먹었는데 이만큼 커서 이제는 맛있는 과자도 먹을 수 있지? 아기가 조금 더 클 때까지 기다려주자”라고 수유시간을 부정하는 첫째 아이에게 매번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앞뒤로는 더 열심히 놓아줘야 한다. 그래서 산욕기는 포기. 산후 2주쯤 지난 순간부터 바닥을 장난감 소방차와 함께 기어 다녀야 했다.


소아과를 다녀오면서 서로 때리고 싸우는 자매를 보았다. 둘째가 자아가 생기면 이제 서로 질투도 하고 싸우기도 할 텐데 부모로서 어떻게 중재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아이가 둘인 집은 그게 가장 힘들다고 하던데. 내 부모님은 어떻게 했을까.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섯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냈을까. 사춘기가 오면? 예기치 못한 엄청난 사고를 치면? 가출을 하면? 엄마랑 말이 안 통한다고 더 이상 대화를 거부하면? 혹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아이에게 큰 상처를 줘버리면 어떡하지. 그런 고민이 매일매일 생기고 있다.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완벽한 부모는 될 수 없을 텐데 그냥 이 부족한 부모를 내 아이들이 너그럽게 생각해 스스로 잘 자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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